문화

어제 마라톤을 뛴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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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간다. 얼굴을 찌푸린다. 다른 사람은 길을 걷는다. 역시 고통스러워 보인다. 또 다른 이는 의자에 앉으려 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무슨 영상인가 싶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자레스의 ‘사랑은 아프다(Love Hurts)’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묘한 조합이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랑 노래. 그런데 이상하게 어울린다.

영상 끝에 가서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라디오에서 DJ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마라톤을 뛴 분들에게 이 노래를 전합니다.”

아, 그랬구나.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 계단을 내려갈 때의 그 표정. 길을 걸을 때의 그 몸짓. 의자에 앉을 때의 그 신중함. 42.195킬로미터를 달린 사람들의 다음 날 일상이었던 것이다.

나이키는 영리했다. 화려한 결승선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환호하는 관중도, 반짝이는 메달도 없었다. 대신 그 다음을 보여주었다. 진짜 현실을.

마지막에 ‘Winning Isn’t Comfortable’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승리는 편안하지 않다. 맞는 말이다. 승리 후에도 편안하지 않다. 오히려 더 불편할 수도 있다.

이 영상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고통을 감추려 했을까. 언제부터 아픈 것을 부끄러워했을까.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의 다음 날은 이렇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어제의 42킬로미터가 떠오른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근육이 기억한다. 그 긴 여정을.

이것이 바로 성취의 증거다. 영광스러운 상처다. 숨길 이유가 없다.

라디오 DJ는 알고 있었다. 어제 마라톤을 뛴 사람들이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그래서 그들에게 노래를 전한 것이다. ‘사랑은 아프다’를.

사랑은 정말 아프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들은 대개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한다.

나는 러너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쓴다. 어제 밤늦게까지 원고와 씨름했다면, 오늘 아침 키보드 앞에 앉을 때의 그 무거움을 안다. 어제의 문장들이 목과 어깨에 남긴 피로를 안다.

하지만 그 피로가 싫지 않다. 오히려 증거다. 내가 무언가와 치열하게 맞붙었다는.

영상 속 사람들은 내일도 뛸 것이다. 계단을 내려갈 때의 고통을 알면서도. 의자에 앉을 때의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왜냐하면 그들은 러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DJ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틀 것이다. 오늘 마라톤을 뛴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일 뛸 사람들을 위해서도.

승리는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승리의 진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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