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내 발을 감싸고 있는 이 푹신한 것은 무엇일까. 신발이라는 단어는 너무 단순해서 그것이 가진 세계를 담아내지 못한다. 아침 조깅을 위해 러닝화를 신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발 아래 놓인 이 작은 물건이 어떤 역사와 기술과 욕망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오래전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나는 필 나이트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오레곤 대학의 육상 선수로 뛰던 시절,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함께 시작한 작은 수입업체가 지금의 거대 제국 ‘나이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1964년, 그들은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지금의 아식스)의 신발을 수입해 팔았다. 한 켤레에 몇 달러 안 하는 신발을 들여와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팔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이키’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기적 같다.
당시 미국은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의 천하였다. 유럽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필 나이트는 동양의 신발을 미국에 소개했다. 그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도. 소설을 쓸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용기는 모든 창조의 시작점이다.
코치 바우어만이 와플 기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와플 솔’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그의 부엌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와플 밑창이 러너들의 기록을 바꾸고, 결국 세계를 바꾸었다. 얼마나 많은 창의성이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종종 소설을 쓰다 막힐 때면 이런 이야기를 떠올린다. 위대한 혁신이 반드시 거창한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당신의 부엌, 당신이 매일 마주하는 그 공간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1971년, 디자인 학생이었던 캐롤린 데이비슨이 단돈 35달러를 받고 만든 ‘스우시(swoosh)’ 로고는 어떤가. 그 단순한 곡선이 이제는 전 세계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무엇이 어떤 상징을 강력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단순함인가,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것이 대표하는 가치인가.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러닝화 브랜드들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갈등과 분열도 있다. 독일의 다슬러 형제는 한때 같은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제는 갈라섰다. 형 루디는 ‘푸마’를, 동생 아돌프는 ‘아디다스’를 창업했다. 그들의 갈등은 고향 마을 헤르초게나우라흐까지 양분시켰다고 한다. 한 마을,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이 분열이 세계적인 두 브랜드의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이 형제의 갈등은 단순한 사업상 불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과 가족,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였다. 소설가로서 나는 이런 복잡한 인간 관계의 얽힘에 매료된다. 가끔은 인물들의 갈등이 오히려 더 큰 창조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경쟁은 스포츠화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몇 해 전 스위스 알프스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작은 마을에서 만난 현지인이 스위스 브랜드 ‘온(On)’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2010년, 아이언맨 챔피언 출신 올리비에 베른하르트가 더 나은 러닝화를 꿈꾸며 시작한 브랜드. 그는 고무 호스를 잘라 붙인 단순한 실험에서 ‘클라우드텍’ 기술을 발견했다.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독특한 쿠셔닝 시스템이 이제는 세계 러너들의 발을 사로잡고 있다. 어쩌면 혁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기존의 것을 자르고, 붙이고,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무언가.
나는 종종 글을 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기존의 단어들을 자르고, 붙이고, 재배열하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올리비에가 고무 호스를 자르며 느꼈을 그 순간의 흥분을, 나는 문장을 다듬을 때 느끼곤 한다.
중국의 ‘361도’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다(one degree beyond)’라는 모토처럼, 그들은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2003년 설립된 이 브랜드는 아식스의 핵심 기술자를 영입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서구 브랜드들이 지배하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렇게 러닝화 시장은 국가 간 기술과 자본의 경쟁이 되었다.
나는 이런 경쟁의 이면에서 하나의 놀라운 현상을 발견한다. 세계화 시대에 국경은 무너졌지만, 브랜드들은 여전히 그들의 국적을 강조한다. 스위스의 정밀함, 중국의 도전 정신, 일본의 세심함, 미국의 혁신. 이런 국가적 정체성이 여전히 브랜드의 핵심 이야기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경계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그 경계를 필요로 할까.
프랑스에서 시작한 ‘호카’는 과감히 신발의 모양새를 바꾸었다. 통상적인 러닝화보다 훨씬 두꺼운 미드솔을 적용한 이른바 ‘맥시멀 쿠셔닝’의 혁신.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 투박한 디자인을 비웃었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되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혁신이란 항상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법이라고.
모든 혁신은 처음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보인다. 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도 그랬다. 익숙한 서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낯섦이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온다. 호카의 두꺼운 밑창처럼 말이다.
브룩스, 아식스, 뉴발란스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들도 각자의 철학으로 시장을 지키고 있다. 아식스의 ‘젤’ 쿠셔닝, 뉴발란스의 다양한 발 너비 옵션처럼 특화된 기술과 접근법이 러너들의 충성도를 만든다. 이들은 화려한 마케팅보다 꾸준한 기술 개발과 장인 정신으로 승부한다.
뉴발란스가 여전히 미국과 영국의 공장에서 ‘메이드 인 USA’, ‘메이드 인 UK’ 라인을 생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일까, 아니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어떤 가치는 느리게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고, 결국 소비자와의 진정한 연결 고리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러닝화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그것은 혁신의 역사요, 창업가 정신의 집약체이며, 글로벌 경쟁의 축소판이다. 누군가의 열정과 집념이 만들어낸 작은 변화가 수많은 러너들의 발을, 그리고 결국 세상을 바꾸고 있다.
러닝화 브랜드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끝없는 탐구심과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 더 빠르게, 더 편안하게, 더 멀리 가고자 하는 욕망. 그것은 단지 스포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열망이다.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 소설가로서 나는 이런 인간의 근원적 열망에 매료된다.
오늘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달렸다. 발 아래 놓인 러닝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땀, 그리고 실패와 성공을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간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걷되, 자신만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 그렇게 우리는 모두 러닝화 브랜드의 역사에 작은 한 획을 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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