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는 단 네 단어였다.
“RUNNERS WELCOME. WALKERS TOLERATED.”
달리는 자는 환영한다. 걷는 자는 봐주겠다.
나이키(Nike)가 제130회 보스턴 마라톤을 앞두고 결승선에서 몇 블록 떨어진 뉴베리 스트리트 매장 쇼윈도에 내건 빨간색 광고다. 보스턴 마라톤의 공식 후원사는 32년째 아디다스(Adidas)다. 즉 이 광고는 경쟁사 대회에서 주목을 훔치는 이른바 ‘엠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의 한 점이었다. 사인은 일주일 가까이 걸렸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국제적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나이키는 광고를 철거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누구를 향한 메시지였나
광고 의도 자체는 읽기 어렵지 않다. 보스턴 마라톤은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중에서도 출전 자격이 가장 까다로운 대회다. 올해 20대 남성의 자격 기준은 2시간 55분, 평균 페이스 1마일당 6분 40초였다.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해 자격 기록은 다시 4분 36초가 단축됐다. 약 3만 명의 참가자 중 10% 정도가 자선단체 쿼터를 통해 출전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록으로 자격을 따낸 러너들이다.
나이키는 이 엄격함을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려 했다. 자격을 통과한 러너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내부자 농담.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챌 윙크다.
문제는 이 메시지가 그 ‘방’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맥락이 제거된 채 휴대폰으로 촬영되어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순간, “Walkers Tolerated”는 출입 통제 정책처럼 들렸다.
에이블리즘이라는 이름의 비판
가장 무거운 비판은 장애인 러너 커뮤니티에서 나왔다. 보스턴 마라톤은 비장애인 엘리트 대회인 동시에 휠체어 디비전, 핸드사이클, 적응(adaptive) 부문 등 장애인 선수들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같은 코스에서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
적응 부문에 출전한 캐나다 러너 로빈 미쇼는 인스타그램에 광고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척수 부상으로 걷기 휴식이 필수입니다. 척수에 낭종이 있어도 보스턴에서 5시간 이내 기록을 유지하고 있고, 이번 주말에도 그럴 계획입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키.”
비판자들이 사용한 단어는 ‘에이블리즘(ableism)’이었다. 비장애 신체를 표준으로 삼아 그 외의 신체를 결함으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이다. 의족을 단 러너, 시각장애 러너, 척수 손상 러너에게 걷기는 ‘게으름’이 아니라 ‘완주의 방법’이다. 광고 문구는 그 완주의 방법을 ‘봐주는 것’으로 격하시켰다.
런-워크-런 방식으로 보스턴 자격을 획득한 러닝 코치 에이미 구글러는 “더 포용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야지, 커뮤니티의 일원을 고립시키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런-워크 러너로서 이 광고는 모욕적이다”고 말했다.
장소도 변수였다. 보스턴은 2013년 결승선 인근에서 폭탄 테러를 겪은 도시다. 당시 부상자 중 다수가 절단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고, 이듬해 일부는 의족을 달고 같은 코스를 완주했다. 그 도시의, 결승선에서 몇 블록 떨어진 매장 쇼윈도에 걸린 문구가 “걷는 자는 봐주겠다”였다.
‘엠부시’라는 패턴
나이키가 광고를 철거하는 사이 경쟁사들이 움직였다. 아디다스는 미쇼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every pace has a pace(모든 페이스에는 그만의 페이스가 있다)”라는 댓글을 달았고, 알트라(Altra)는 “참아지는 곳이 아니라 환영받는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아식스(Asics)는 펜웨이 파크 인근에 “Runners. Walkers. All Welcome.” 빌보드를 게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나이키는 자사가 후원하지 않는 런던 마라톤 코스에 “Never Again. Until Next Year(다시는 안 해. 내년까지는)”라는 광고를 걸었다. 결승선에서 러너들이 흔히 내뱉는 자조적 농담을 비튼 카피였다. 그러나 ‘다시는(Never Again)’은 영어권에서 홀로코스트 추모와 결부된 관용구로 자주 쓰인다.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보스턴 사인이 걸리기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나이키는 런던 페캄 라이 공원의 ParkRun 행사장—자원봉사로 운영되는 무료 커뮤니티 러닝—에 “You didn’t come all this way for a walk in the park(이 먼 길을 와서 공원 산책하려는 건 아니었을 텐데)” 광고와 “Runners Only(러너 전용)” 푯말을 무단으로 깔았다. ParkRun 측은 “사람들은 정말로 공원에 걸으러 옵니다. 아주 먼 곳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환영받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세 사건의 구조는 같다. 자사가 후원하지 않는 행사에서 도발적인 카피로 주목을 훔치고, 비판이 일면 사과로 마무리한다. 엠부시 마케팅은 변두리에서 중심을 흔드는 전략이다. 다만 도발의 강도가 점점 거칠어지면서, 보스턴에서는 그 칼날의 방향이 어긋났다.
진짜 문제는 시장 구조
이번 사건이 단순한 광고 사고를 넘어 분석 대상이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이키가 처한 시장 상황 때문이다.
나이키는 여전히 세계 1위 스니커 브랜드다. 그러나 진지한 러너들이 전문 매장에서 구매하는 러닝화 시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업계 집계 기준으로 1위는 21% 점유율의 브룩스(Brooks)다. 호카(Hoka), 뉴발란스(New Balance), 아식스, 사우코니(Saucony)가 그 뒤를 잇는다. 나이키는 이 명단에 들지 못한다.
원인은 나이키 스스로 만들었다. 몇 년간 한정판 스니커 사업에 집중하면서 전문 러닝 시장에서 손을 뗐고, 그 사이 호카와 온(On)이 빠르게 들어왔으며 브룩스가 1위를 굳혔다. 18개월 전 은퇴에서 복귀한 엘리엇 힐 CEO는 러닝을 최우선 과제로 재설정했지만, 잃은 자리를 단숨에 되찾을 수는 없다. 메이저 대회의 공식 후원 자리에서 밀려난 처지에서, 엠부시 마케팅은 변두리로부터 주목을 끌어오는 임시 수단이다.
이번 광고는 그 재정복 전략의 일환으로 읽을 수 있다. 자격을 통과한 진지한 러너들에게 ‘우리는 당신 편’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그러나 전문 러너 시장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포용성이며, 보스턴 마라톤이 지난 수십 년간 적응 부문을 확장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키가 사로잡으려 한 청중과 나이키가 모욕한 청중은 상당 부분 겹친다.
사과의 형태, 그리고 그다음
광고 철거 후 자리를 채운 새 문구는 “Boston will always remind you, movement is what matters(보스턴은 언제나 일깨워준다,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라는 사실을)”였다. 무난하고 안전하다.
업계 일부에서는 다른 평가도 나왔다. 2018년 콜린 캐퍼닉 캠페인 당시 나이키는 거센 논란을 견뎌냈고 결과적으로 매출과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사과 매뉴얼로 곧장 후퇴할 일이 아니었다는 시각이다. 다만 이 비교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캐퍼닉 캠페인은 인종차별이라는 사회 의제에 브랜드가 입장을 선택한 사건이었다. 보스턴 광고는 같은 스포츠 커뮤니티 내부의 일부를 등급화한 사건이다. ‘입장의 선택’과 ‘내부의 차별’은 다른 종류의 도발이며, 후퇴의 의미도 다르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이키가 진지한 러너들의 자부심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전문 러닝 시장에서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번 광고는 단순한 표현 실수가 아니라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다. 사과문에는 등장하지 않은 질문이지만, 다음 캠페인이 답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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