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타스키를 잇는 나라, 기록을 쫓는 나라

|

같은 42.195km, 다른 두 개의 달리기

새해 첫날 아침, 도쿄의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일본인들이 집에서 새해 음식을 먹고 있어서가 아니다. TV 앞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1월 1일 오전 9시 15분, 신년 에키덴의 출발 총성이 울리면 일본 전역이 멈춘다. 37개 실업팀 선수들이 100km를 일곱 구간으로 나누어 달리는 이 릴레이 마라톤의 시청률은 12%에 달한다. 다음 날인 1월 2일과 3일, 대학생들이 뛰는 하코네 에키덴이 시작되면 시청률은 30%를 넘어선다. 이틀간 5,600만 명이 시청한다. 일본 인구의 절반이다.

같은 시각, 서울 한강변에는 새벽 러닝을 마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SNS에 기록을 올린다. 2024년 한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254회, 참가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대회 수는 13배, 참가자는 108배 증가했다. 러닝화 시장만 1조 원이 넘는다. 한국도 달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양국 모두 달리기에 열광하는데, 달리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어깨띠 하나에 담긴 것들

에키덴의 핵심은 ‘타스키’라 불리는 어깨띠다. 에도 시대, 도쿄와 교토 사이 500km를 전령들이 역마다 교체하며 메시지를 전달했던 릴레이에서 유래했다. 타스키는 단순한 바통이 아니다. 팀 동료들과 공유하는 역사, 땀, 열정, 목표가 담긴 무거운 책임이다.

규칙도 독특하다. 팀원 중 한 명이 부상으로 주행을 포기하면 해당 팀의 기록은 무효가 된다. 선두와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뒤처진 팀의 다음 주자는 이전 주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팀의 전통을 잇지 못했다’는 상징적 패배를 의미한다. 일본 선수들은 이 순간을 가장 두려워한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 달린다는 것. 타스키를 넘겨받은 선수는 앞선 동료의 노력 위에서 달리고, 타스키를 넘겨주는 선수는 다음 동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뛴다. 마라톤이 고독한 싸움이라면, 에키덴은 연대의 예술이다.

지루함을 몰아낸 발명

일반 마라톤은 솔직히 지루하다. 42.195km를 혼자 달리기 때문에 선수들은 페이스를 보수적으로 유지한다. 페이스메이커가 30km까지 끌어주고, 선수들은 그 뒤에 숨어 에너지를 아낀다. 승부는 마지막 10km에서나 갈린다. 시청자 입장에서 2시간 넘게 비슷한 장면을 보는 셈이다.

에키덴은 다르다. 구간이 20km 전후로 짧기 때문에 선수들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린다. 눈앞의 선수를 추월하고, 뒤에서 쫓아오는 선수를 의식하며, 매 순간이 경쟁이다. 타스키를 주고받을 때마다 변수가 생기고, 팀마다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역전과 재역전이 빈번하다. 한 대회에서는 단일 구간에서 23명을 추월하는 대역전극이 펼쳐지기도 했다.

방송사들은 이 드라마를 극대화한다. 전 구간을 생중계하면서 선수 한 명 한 명의 성장 배경, 가족사, 팀 내 스토리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어 레이스 중간중간에 배치한다. 마라톤에 관심 없는 시청자도 마치 드라마를 보듯 경기에 몰입한다. 10시간짜리 스포츠 중계가 어떻게 국민 콘텐츠가 되었는지, 그 비결이 여기에 있다.

7분의 간극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25년 12월, 일본의 오사코 스구루는 스페인 발렌시아 마라톤에서 2시간 4분 55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일본 신기록이다. 같은 해 한국 최고 기록은 박민호의 2시간 11분 58초. 차이는 7분 3초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2km 이상 더 달릴 수 있는 격차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 기록의 정체다. 이봉주가 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7분 20초가 2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이 기록은 세계 19위권이었다. 지금은 세계 550~600위권에 해당한다. 세계가 달리는 동안 한국은 멈춰 있었다.

반면 일본은 2025년 한 해에만 2시간 10분 이내 기록을 63회 달성했다. 케냐 133회, 에티오피아 125회에 이어 세계 3위다. 미국보다 네 배 가까이 많다. 한국은 0회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2021년 비와코 마라톤 한 대회에서만 42명의 일본 선수가 2시간 10분 벽을 깼다. 한국 전체 역사에서 이 벽을 넘은 순수 국내 선수는 손에 꼽는다.

화수분의 비밀

일본 육상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41만 2,660명이다. 중학교 18만 7천 명, 고등학교 9만 7천 명, 대학교 2만 명, 성인 7만 7천 명. 피라미드가 아니라 화수분이다. 한국은 6,261명. 일본의 1.5%에 불과하다.

이 차이는 학교에서 시작된다. 일본 고등학교의 겨울 체육 수업에서는 3~4km 달리기가 필수다. 교토의 가모가와 강변에서는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록 측정을 위해 달리는 모습이 일상이다. 유년기 학교 체육에서 자연스럽게 육상을 접하고, 중고교 육상부를 통해 대학과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에키덴은 이 시스템의 정점에 있다. 하코네 에키덴에서 우승하거나 상위권에 입상하면 해당 대학의 입학 지원자 수가 늘어날 정도다. 대학들은 에키덴에 투자하고, 기업들은 장시간 노출되는 에키덴에 광고를 넣기 위해 경쟁한다. 국민적 관심이 투자를 부르고, 투자가 경쟁을 부르고, 경쟁이 실력을 끌어올린다.

에키덴의 구간 거리가 20km 전후, 즉 하프 마라톤에 가깝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학 시절부터 매년 이 거리를 소화하며 집중 훈련을 받기 때문에, 졸업 후 풀코스 마라톤으로 전향하는 데 있어 신체적·심리적 장벽이 낮다. 에키덴은 엘리트 마라토너의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타스키의 그림자

물론 에키덴이 만능은 아니다.

20km를 전력으로 달리는 훈련이 42.195km의 인내와 같을 수는 없다. 에키덴 스타가 풀코스에서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프 마라톤까지는 세계 정상급이지만, 30km를 넘어서면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는 선수들. 일본 육상계 일부에서는 “에키덴이 마라톤을 망쳤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타스키의 무게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팀을 위해 부상을 숨기고 뛰다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경우, 타스키를 넘기지 못한 트라우마로 은퇴하는 선수들. 연대의 아름다움 뒤에는 개인을 짓누르는 집단의 압력이 존재한다. 2018년 프린세스 에키덴에서 19세 선수가 경골 골절 상태에서도 200m 이상을 무릎으로 기어 타스키를 넘긴 장면은 감동과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전치 3~4개월 진단, 3년에 걸친 재활. “미담인가, 가혹 행위인가”라는 논쟁은 에키덴 문화의 양면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럼에도 일본이 에키덴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작용보다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41만 명의 선수 풀, 국민적 관심,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에키덴이라는 문화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과,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것 사이의 차이다.

한국도 달린다. 러닝 크루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마라톤 대회 참가권은 티켓팅 전쟁을 치른다. 2025 서울하프마라톤에는 역대 최다인 2만 1,700명이 참가했고, 그중 71%가 20~30대 청년이었다. 러닝화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마라톤은 더 이상 중장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러닝 붐의 역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러닝 붐으로 아마추어 동호인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엘리트 마라톤은 오히려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2024 파리 올림픽에 한국 마라톤 선수는 단 한 명도 출전하지 못했다. 기준 기록(남자 2시간 8분 10초)을 충족하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주로에 ‘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선 선수는 북한의 한일용이 유일했다.

황영조 감독의 진단은 냉정하다.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이다. 선수들의 훈련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30년 전 실업팀이 10개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91개다. 선수는 적고 팀은 많으니 전국체전 입상만 해도 높은 연봉이 보장된다. 기록 경신에 도전할 유인이 없다. 기록이 안 나와도 도태되지 않는다.

전국체전 성적이 선수와 지도자의 연봉 계약에 가장 크게 반영되는 구조도 문제다. 선수들은 ‘기록’이 아닌 ‘대회 입상’을 목표로 운동한다. 전국체전이 끝나면 휴가를 가고 훈련을 쉰다. 국제 기록과는 점점 멀어진다.

연결과 고립 사이

결국 차이는 ‘연결’에 있다.

일본의 에키덴은 엘리트 선수와 대중을 연결한다. 5,600만 명이 시청하는 콘텐츠 안에서 선수들은 스타가 되고, 그 스타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육상부에 들어간다. 대학 에키덴에서 활약한 선수가 실업팀으로 가고, 실업팀에서 신년 에키덴을 뛰고, 그 무대에서 마라톤으로 전향한다. 선순환이다.

한국의 러닝 붐에는 이 연결 고리가 없다. 아마추어와 엘리트 사이에 다리가 없다. 100만 명이 달리지만, 그중 누구도 엘리트 선수의 경기를 보지 않는다. 엘리트 선수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러닝은 개인의 취미로 소비될 뿐, 스포츠로서의 마라톤과 접점이 없다.

에키덴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하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가 뛰지 않아도 소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있다면, 대중은 마라톤을 본다.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투자가 따라오고, 투자가 따라오면 선수층이 두터워진다.

타스키를 넘겨줄 준비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을 넘어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들어서는 황영조의 모습을 기억한다.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마라톤 정상에 선 최초의 한국인. 그날 새벽, TV 앞에서 잠을 쫓으며 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함성을. 2001년 4월,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이봉주의 얼굴을 기억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순간. 그 시절 마라톤은 온 국민이 함께 보는 스포츠였다.

황영조가 월계관을 쓴 지 33년, 이봉주가 보스턴에서 우승한 지 24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마라톤의 시계는 멈췄다. 아니, 시계만 멈춘 것이 아니다. 마라톤을 함께 보던 사람들도 흩어졌다.

반면 새벽 한강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달린다. 러닝 크루는 매주 모임을 갖고, 마라톤 대회는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된다. 이 열정을 어떻게 엘리트 육상과 연결할 것인가. 러닝을 즐기는 100만 명이 마라톤을 ‘보는’ 100만 명이 될 수 있는가. 그 100만 명의 관심이 유망주를 키우고, 지도자를 바꾸고,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는가.

에키덴의 타스키는 말한다. 혼자 달리면 기록은 남지만, 함께 달리면 역사가 남는다고. 앞선 주자의 땀 위에서 다음 주자가 달리고, 그 다음 주자가 또 달린다고.

한국 마라톤이 넘겨받아야 할 타스키는 기록이 아니라 연결이다. 달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 아마추어와 엘리트, 오늘의 러너와 내일의 선수를 잇는 어깨띠. 그것을 만들 수 있다면, 25년간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새해 첫날, 5,600만 명이 TV 앞에 모이는 나라. 그들이 보는 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연결이다. 한국도 달린다. 이제 연결할 차례다.

마라톤에키덴일본하코네 역전
  • 조상래

    달리기에 빠진 러너 pacemaker@runtalk.kr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