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라톤 배번표의 암시장’ 완주보다 값비싼 참가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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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 복잡한 사회 현상이 될 줄이야.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위해, 또 누군가는 SNS의 인증샷을 위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이제 마라톤 대회 참가는 하나의 ‘경쟁’이 되어버렸다.

대규모 마라톤 대회 즈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마라톤 배번표가 빈번하게 거래된다.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참가가 어려워서”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사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른바 ‘대리 참가’를 위한 거래도 있고, 처음부터 재판매를 목적으로 신청한 경우도 있다.

마라톤 배번표는 단순한 번호가 아니다. 그것은 참가자의 신원을 증명하는 동시에, 대회 운영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번호는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 보험 처리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이 오히려 암시장을 키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조직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대책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부상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가가 불가능할 경우, 배번표를 사무국으로 반송하면 다음 대회 우선 참가 신청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5년간의 참가 제한이라는 강력한 제재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가 과연 효과적일까?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다. 누군가는 이미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배번표를 거래하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은밀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마라톤은 원래 고독한 스포츠였다. 42.195km를 달리는 동안, 러너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이제 그 고독은 희미해지고 있다. 대회 참가는 하나의 사회적 지위가 되었고, 배번표는 그 지위를 증명하는 증서가 되어버렸다.

어떤 이들은 ‘완주’보다 ‘참가’ 자체에 집착한다. SNS에 올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배번표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한 스포츠 정신의 훼손을 넘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신고 채널 운영이라는 새로운 시도도 시작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신고는 부정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러너들 사이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마라톤의 본질을 되찾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왜 우리는 달리는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배번표 양도와 재판매는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다. 그것은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가진 순수한 가치의 훼손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이 거울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모습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진정한 변화는 러너들의 인식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달리기의 본질을 되찾는 것, 그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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