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찬을 넘어, 대회 전체를 브랜드 경험으로
브랜드가 이름과 IP, 서비스를 전면에 내건 러닝 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2025년 10월 여의도공원에서 국내 첫 디즈니 공식 러닝 행사 ‘디즈니런 서울’을 선보였고, 카카오는 8월 4일, 오는 10월 10일 성남 탄천 일대에서 1만 명 규모의 ‘카카오프렌즈 런 2026’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러닝 마케팅이 단순 협찬을 넘어 대회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 행사로 설계하는 단계로 옮겨갔다.
배경에는 빠르게 커진 러닝 참여층이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만 13세 이상 국민의 31%가 최근 1년간 조깅이나 달리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기 러너 수를 뜻하지는 않지만, 달리기를 접해본 잠재 참여층이 폭넓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대회 개최 횟수와 참가 인원도 빠르게 늘었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집계 기준으로 국내 마라톤 대회는 코로나19로 대면 행사가 위축됐던 2020년 19회에서 2022년 142회, 2024년 254회로 확대됐고, 2024년 참가 연인원은 100만8,122명이었다. 2025년 12월 참가자 1만5,000명을 모집한 2026 경주벚꽃마라톤은 접수 개시 직후 전년 대비 3배 이상의 접속자가 몰리면서 시스템 지연이 발생했고, 접수 일정이 조정됐다. 인기 대회를 중심으로 참가 신청이 단시간에 몰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광고가 아니라 참여
기업들이 러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접점의 성격에 있다. 참가자는 접수와 사전 준비, 대회 당일의 집결과 레이스, 완주 후 공연과 부스 체험까지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행사 안에서 보낸다. 몇 초짜리 광고 노출이나 짧은 체류로 끝나는 매장 방문과는 브랜드와 머무는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 참가자는 대회 티셔츠를 입고 도심을 달리는 동안 브랜드와 함께 움직이고, 완주 메달 인증 사진으로 SNS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 퍼뜨린다. 광고를 수동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행사와 콘텐츠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같은 러닝이라도 기업마다 노리는 것은 다르다. 디즈니에는 러닝 대회가 캐릭터 IP를 영상과 상품 밖의 오프라인 경험으로 확장하는 수단이다. 디즈니런 서울은 정원 1만5,000명을 추첨으로 뽑고 유니클로 협업 티셔츠와 캐릭터 포토존을 앞세운 축제형 대회였다. 카카오에는 흩어져 있는 자사 서비스를 한 행사 안에서 연결해 이용자에게 체험시키는 서비스 쇼케이스에 가깝다. 카카오프렌즈 런의 접수는 공식 홈페이지와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진행되고, 참가자용 디지털 카드는 카카오톡 지갑을 통해 발급된다. 대회 정보는 카카오맵, 기부 캠페인은 카카오같이가치와 연결되며 그룹사 공연과 약 30개 체험 부스가 붙는다.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카나나 인증샷 서비스와 ChatGPT for Kakao 기반의 AI 러닝 코칭, 비참가자를 위한 버추얼 런도 더해진다.
수요는 늘고 비용도 올랐다
참가비 흐름은 이 시장의 양면을 함께 보여준다. 동아마라톤(서울마라톤) 참가비는 2015년 풀코스 5만 원에서 2024년 패키지·코스별 7만~10만 원으로 두 배가량 올랐다. 춘천마라톤은 풀코스 4만 원에서 2023년부터 8만 원이 됐고, JTBC 서울마라톤도 2024년 코스별 7만~8만 원까지 오른 데 이어 2026년 대회에서는 러닝 엑스포 도입과 함께 풀코스 15만 원, 10km 10만 원으로 참가비를 올렸다. JTBC 사무국은 앞선 인상 당시 공지에서 스폰서 환경 악화와 제반 비용 증가 속에 참가자 안전과 운영 품질 투자를 줄일 수 없어 불가피한 조정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참가비 상승은 운영비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다. 동시에 추첨제 도입과 접수 지연이 이어지는 인기 대회의 사례는 가격 인상에도 대회 참가 수요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랜드 대회의 가격은 그 안에 자리 잡았다. 10km 기준으로 보면 카카오프렌즈 런과 디즈니런 서울은 각각 8만 원으로, 2026 JTBC 서울마라톤의 10km 참가비 10만 원보다 낮다. 캐릭터와 굿즈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대회끼리는 비슷한 가격이 형성된 셈이다. 카카오프렌즈 런의 8만 원에는 ARC 협업 러닝 의류 세트와 완주 메달, 참여 브랜드 상품 패키지가 담기고, 디즈니런 서울은 유니클로 협업 티셔츠와 메달을 제공했다. 기록 측정과 코스 운영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전통 대회와, 캐릭터·굿즈·현장 체험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브랜드 대회가 서로 다른 가치 구성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많은 참가자를 모았다고 해서 곧바로 브랜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사 전후 브랜드 호감도 변화, SNS 콘텐츠 생성량과 도달률, 자사 서비스 신규 이용, 행사 이후 굿즈·콘텐츠 소비, 재참가 의향 같은 지표가 브랜드 러닝의 실질적인 성과를 가른다. 대회가 늘어난 만큼 과제도 따라온다. 경찰청 자료가 공개되면서 대회 증가에 비해 안전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한 사고는 179건이었고, 2024년에는 72건으로 가장 많았다.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행사에서 도로 통제와 의료 대응, 운영 품질은 주최가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항목이다. 특히 브랜드 대회는 운영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브랜드로 돌아온다.
기업이 러닝 대회를 여는 이유는 단순히 로고를 오래 노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디즈니는 캐릭터 세계를 참가자가 직접 달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카카오는 흩어져 있던 자사 서비스를 하나의 행사 안에서 연결한다. 완주 뒤에도 브랜드 호감과 서비스 이용이 남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안전하게 제공했는지가 브랜드 러닝의 진짜 성과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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