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계의 거리,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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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한계가 있다. 하나는 실제의 한계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낸 한계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tvN의 ‘무쇠소녀단’은 이런 혼란스러운 경계에 도전장을 내민 네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진서연, 유이, 설인아, 박주현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기대에 찬 눈빛을, 또 다른 이는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미소를. 10km라는 거리 앞에서 그들이 보인 반응은 우리 모두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늘 알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불안해하니까.

10km는 서울 시청에서 강남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차로 가면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늪을 건너는 것과 같다. 같은 1분이라도 시작점의 1분과 종착점 직전의 1분은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달리기에서 진정한 거리는 물리적 수치가 아닌, 정신과 육체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총체다.

유이의 56분 32초는 그렇게 탄생했다. 275명의 여성 참가자 중 23위라는 기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그녀가 지난 시간 동안 자신과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조차 경기가 예상보다 어려웠다고 실토했다는 점이다.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녀의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종종 준비된 고통조차 버거워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자 매력이다.

설인아의 도전은 더욱 극적이다. “죽을 맛이다”, “큰일이다”라는 그녀의 독백은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 선 인간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옆구리 통증은 그녀의 의지를 시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간에 포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녀는 달렸다. 1시간 11분. 그녀가 자신의 한계와 싸운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고통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박주현은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줬다. 그녀는 달리기를 소통의 도구로 활용했다. 다른 참가자들과 대화하며 1시간 4분을 완주한 그녀의 방식은, 고통을 나눔으로써 줄일 수 있다는 오래된 진리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혼자서 견디기 힘든 것들을 누군가와 함께할 때 조금 더 쉽게 견뎌낸다.

진서연의 1시간 13분은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완주 직전, 그녀의 다리는 떨렸다고 한다. 호흡은 거칠었고, 온몸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팀원들의 응원이 그녀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녀의 완주는 팀워크가 개인의 한계를 어떻게 확장시키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다.

이들의 도전을 지켜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한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한계를 의심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한계를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의심이 깨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라톤 완주 후, 이들의 표정에서 특별한 감정이 읽혔다. 그것은 자신과 싸워 이긴 자의 고요한 자부심이었다. 피로와 성취감이 뒤섞인 미소 속에서 나는 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보다 언제나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진실을. 그리고 그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을.

훈련 과정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유이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밀어냈다. 설인아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박주현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발견했고, 진서연은 동료들의 응원이 주는 힘을 경험했다.

그들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0km 마라톤은 끝났지만, 그들은 이제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더 큰 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안다. 진짜 한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지점보다 언제나 조금 더 멀리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조금 더 강해져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달리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한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자신을 만나게 된다.

‘무쇠소녀단’의 도전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도전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계라는 것의 본질이니까. 한계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고, 새로운 한계는 또다시 도전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끝없는 여정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10K러닝마라톤무쇠소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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