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스는 끝났다. 존 코리르의 발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보스턴의 하늘은 고요했다. 2025년 4월 21일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케냐의 존 코리르가 2시간 4분 45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코리르는 아식스 메타스피드 스카이 파리스를 신고 나타났다. 이 신발이 그의 승리를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숨소리, 땀의 무게, 그리고 마지막 스퍼트의 결단력은 분명했다. 신발 브랜드들의 숨 가쁜 경쟁 속에서, 아식스는 남자부 정상에 자사의 기술력을 각인시켰다.
탄자니아의 알폰스 펠릭스 심부가 2시간 5분 4초로 2위, 케냐의 사이브리안 코투트가 동일한 기록으로 3위를 차지했다. 두 선수 모두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2를 신었다. 같은 신발, 같은 시간. 그러나 다른 운명이었다. 이들의 기록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신기록으로 여겨질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우승자의 뒤’일 뿐이다. 마라톤의 기록은 신발과 함께 진화하고 있었다.
여자부에서는 케냐의 샤론 로케디가 2시간 17분 22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녀는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던 선수다. 당시 그녀는 언더아머 벨로시티 엘리트 2를 신고 2시간 23분 14초의 기록을 세웠으나,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된 언더 아머 벨로시티 엘리트 3으로 갈아신고 약 6분 가까이 자신의 기록을 단축했다.
로케디의 발전은 선수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언더아머가 1년간 펼친 기술 혁신의 결과물이 그녀의 발에 있었다. 탄소 섬유판과 새로운 폼 기술의 결합, 무게의 경량화, 그리고 최적화된 착화감. 이 모든 요소들이 6분이라는 놀라운 기록 단축을 가능케 했다. 러닝화의 진화가 기록의 진화를 이끈 셈이다.
2위는 같은 케냐의 헬렌 오비리(2시간 17분 41초)가 차지했다. 오비리는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주인공이다. 당시 그녀는 온 클라우드붐 스트라이크 LS를 신고 2시간 23분 10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도 그녀는 같은 브랜드를 선택했고, 약 5분 30초 가량 기록을 단축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스위스 브랜드 온(ON)이 내세운 ‘클라우드붐 스트라이크 LS’는 세계적인 규모의 신발 브랜드들 사이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이 작은 회사는 독특한 쿠셔닝 시스템으로 주목받았고, 오비리의 발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했다. 신발 시장의 다윈주의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3위는 에티오피아의 얄렘저프 예후알라우(2시간 18분 6초)가 차지했다. 그녀는 나이키 알파플라이 3을 신고 달렸다. 파리 올림픽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시판 하산이 신었던 바로 그 모델이다. 하산은 2시간 22분 55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지만, 예후알라우는 그보다 무려 4분 49초나 빠른 기록을 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한계는 계속해서 깨지고 있다.
나이키의 알파플라이 3은 한때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기술 도핑’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국제육상연맹은 결국 이를 허용했다. 그리고 이제 알파플라이는 더 이상 ‘특별한’ 신발이 아니다. 모든 브랜드가 비슷한, 혹은 더 나은 기술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평등해졌다.
보스턴 마라톤의 러닝화 경쟁은 파리 올림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올림픽에서 나이키 알파플라이 3이 상위 10위권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의 선택을 받았다면, 이번 보스턴에서는 아디다스와 언더아머가 선전했다. 특히 남자부 2, 3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모두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2를 신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술의 민주화는 도로 위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한때 나이키가 독점하던 첨단 기술은 이제 아디다스, 아식스, 온, 언더아머 등 다양한 브랜드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더욱 빠른 기록으로 이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록의 진화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시판 하산의 2시간 22분 55초보다,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샤론 로케디의 기록이 2시간 17분 22초로 무려 5분 33초나 앞섰다. 불과 1년 사이에 인류의 마라톤 기록은 또 한 번 도약했다.
이러한 급격한 기록 향상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신발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기술 발전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보스턴 마라톤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 다양한 숫자와 스토리가 공존하는 축제였다. 올해 대회에는 총 1,585명의 주자들이 애보트 월드 마라톤 메이저스의 ‘식스 스타’ 메달을 받기 위해 보스턴을 찾았다. 그들은 보스턴을 포함해 도쿄,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 등 세계 6대 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이들이다. 이 중 여성은 572명, 남성은 1,013명. 숫자는 말한다. 마라톤은 여전히 성별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또한 올해 대회에는 83개국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가장 많은 참가자를 배출한 국가는 미국(368명), 영국(142명), 중국(68명) 순이었다. 마라톤의 세계화는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우승을 독차지하지만, 참가자의 다양성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연령대의 다양성이다. 올해 대회의 최고령 참가자는 80세, 최연소 참가자는 23세였다. 또한 대회 당일 생일을 맞은 3명의 주자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날은 두 배로 특별했을 것이다.
67명의 주자들은 보스턴과 런던 마라톤을 연달아 완주하는 이중 도전에 나섰다. ‘스타 5’와 ‘스타 6’을 한 번에 따내기 위한 이들의 도전은 마라톤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대회를 넘어 시리즈로, 개인의 도전을 넘어 열정의 확장으로.
보스턴 마라톤의 결과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스포츠 과학의 진보와 인간 능력의 확장을 보여주는 사례다. 코리르, 로케디, 심부, 오비리…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달렸지만, 그들의 발을 감싼 것은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첨단 기술이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1,556명의 ‘퍼스트 타이머’들이다. 처음으로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한 이들. 그들의 첫 발자국은 어쩌면 미래의 우승자를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29명의 주자는 정규 코스를 넘어 ‘추가 라운드’를 달렸다. 42.195km로는 부족했던 그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숫자다.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스포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스턴 마라톤은 단순한 달리기 대회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 능력의 경계를 탐험하는 실험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러닝화는 얼마나 더 진화할 것인가. 파리 올림픽에서 보여준 브랜드 간의 치열한 경쟁은 보스턴에서도 이어졌다. 나이키, 아식스, 아디다스, 언더아머, 온. 이들의 기술 경쟁은 인간의 한계를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의 기록은 내일의 평범한 성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스포츠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보스턴 마라톤은 내년에도 열릴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어떤 신발이, 어떤 기술이, 얼마나 더 빠른 기록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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