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게) 펀런이 어딨나? 즐거운 달리기는 일반인한테 어울리는 거지. 엘리트가 펀런이 어울리나?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심정, 고통을 감수하는 태도로 운동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선수가 없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이 한국 마라톤의 심각한 위기를 진단하고 나섰다. 최근 유튜브 채널 ‘골드클래스‘에 출연한 황 감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국 마라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재건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한때 아시아 마라톤의 강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몽골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황 감독은 지적했다. 특히 겨울철 훈련이 제한적인 몽골과 비교하며 한국 마라톤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과거 아시아를 주름잡던 한국 마라톤의 브랜드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적 훈련법과 첨단 장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최첨단 장비 없이도 세계적인 기록을 내고 있다”며 마라톤의 본질이 첨단 장비나 과학적 훈련법보다는 기본기와 강도 높은 훈련에 있음을 강조했다.
“현대 선수들은 과거에 비해 훈련 강도가 현저히 낮고, 장거리 연습이 특히 부족하다”고 황 감독은 지적했다.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안일한 훈련 자세가 저조한 성적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힘들면 적당히 넘어가는 현재의 태도로는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의 사례를 들며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은 마라톤이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 잡아 다양한 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구간 마라톤이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구간 마라톤의 인기는 젊은 선수들의 유입을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황 감독은 이러한 일본의 시스템을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차세대 선수 육성의 문제다. 황 감독은 “중·고등학교 단계의 유망주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기존 엘리트 선수들이 은퇴해야 할 나이에도 대체 선수가 없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경주 국제마라톤에서 은퇴 후 복귀한 선수가 우승한 사례를 들며, 한국 마라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황 감독은 한국 마라톤의 부활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엘리트 선수들과 일반 마스터스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고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0대 엘리트 선수들이 제대로 된 기록도 내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훈련 방식의 혁신도 강조했다. 현재처럼 개별 훈련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기적인 합동 훈련과 체계적인 기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수들의 부상 예방과 회복을 위한 의료 지원 시스템 구축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재정적 지원 확대 방안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업 후원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지원 확대, 그리고 은퇴 선수들의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 도입 등이다.
황 감독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 마라톤의 기대주인 박민호 선수가 여름 훈련을 성실히 소화하며 좋은 기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임예진 선수의 복귀로 여자 마라톤에서도 희망적인 전망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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