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한강공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러닝화를 신은 사람들로 둑길은 붐볐다. 형형색색의 러닝복을 입은 이들이 각자의 리듬으로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그리고 또 누군가는 중간중간 멈춰 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마치 현대판 순례자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손목에는 하나같이 스마트워치가 채워져 있었고, 이어폰을 통해 각자의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도시의 새로운 의식(儀式)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러닝은 체육 시간의 윗몸 일으키기처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운동의 대명사였다. “달리기는 지루하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러닝은 ‘부티크 피트니스’만큼이나 트렌디한 운동이 되었고, 러닝화는 한정판 스니커즈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일도 흔해졌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에는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이른바 ‘러닝 붐’이다. 단순히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된 것이다. 네이버 밴드의 ‘러닝 및 걷기’ 관련 모임은 3년 새 77%나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러닝’ 태그를 단 게시물은 350만 개를 넘어섰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러닝을 한다. “달리기 전과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되었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러닝은 명상이자, 자기 대화의 시간이며, 때로는 문제 해결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갖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고독한 사색의 시간, 자연과의 교감, 명확한 성취감. 러닝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제공한다. 게다가 특별한 장비나 비싼 회비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러닝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물론 요즘은 러닝화가 많이 비싸졌지만 말이다.
MZ세대는 이 현상의 중심에 있다. 그들에게 러닝은 ‘헬시 플레저’라는 새로운 문화 코드와 맞물려 있다. SNS에 러닝 기록을 인증하는 것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증명하는 동시에, 자기 관리에 성공한 개인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러닝 크루에 가입하는 것은 마치 조선 시대 선비들이 시사(詩社)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만의 언어와 룰, 그리고 위계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러닝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라는 모순된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달리기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운동이다. 누구도 대신 달려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러닝은 강력한 연대감을 만들어낸다.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러닝 크루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함께 달리고, 서로를 응원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다. ‘대리 출전’과 같은 부정행위가 대회때마다 만연하고, 마라톤 대회장에는 ‘뻐꾸기’라 불리는 무단 참가자들이 있다.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러닝 코스 곳곳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이 붐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성과주의와 인증문화가 만들어낸 부작용,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외면되는 공공의 가치들.
러닝화 매출이 증가하고, 관련 주식이 상승하는 것은 표면적인 변화일 뿐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왜 달리기에 이토록 매료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팬데믹이 앗아간 것들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적어도 달리기만큼은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우리가 러닝에 빠져든 진짜 이유는 아닐까.
달리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전부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단순함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위안일지도 모른다.
한강 둑길을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달린다. 하지만 그 발걸음에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 혹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싶은 욕망. 러닝 붐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지만, 정작 무엇을 쫓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현대인의 모습. 그래도 우리는 달린다. 때로는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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