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라토너가 완주를 위해 달리는 동안, 평균 여섯 개의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 서울마라톤 참가자 3만 명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만 18만 개의 컵이 쓰레기로 전락한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국제마라톤연맹(IA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하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연간 약 2억 개에 달한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마라톤이 역설적이게도 지구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달리지만, 뒤에 남겨지는 발자국은 지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환경과학저널(ESJ)의 최신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수치로 보여준다. 마라톤 대회에서 사용되는 종이컵 한 개당 약 45.2그램의 탄소가 배출된다. 물 다섯 잔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이는 자동차가 약 1킬로미터를 달릴 때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대회에 참가하는 수천, 수만 명의 달리기 애호가들이 무심코 사용한 컵이 곧 지구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환경보건센터의 연구진은 더 우려스러운 분석을 내놓았다.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82%가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다시 우리의 일상에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걸음은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2023년 런던마라톤은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식용 해조류 캡슐에 물을 담아 제공한 것이다. 3만 6천 명의 참가자들은 플라스틱 컵 대신 이 작은 캡슐을 깨물어 수분을 보충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쓰레기 양이 전년 대비 47% 감소했으며, 참가자들도 새로운 방식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러한 시도는 환경을 고려한 작은 발걸음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보스턴마라톤은 더 과감했다. ‘Zero Waste Challenge’라는 목표를 세우고, 모든 급수대에 정수 시스템을 설치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재사용 가능한 물병을 지참하게 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반발도 있었지만, 참가자 설문 결과 89%가 이 정책을 지지했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지지율이 높았는데, 이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젊은 층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일본의 교토마라톤도 환경 보호를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스마트 트래킹’ 시스템을 통해 참가자가 앱으로 쓰레기 투기 지점을 신고하면 드론이 즉시 수거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쓰레기 수거 시간을 90% 단축했으며,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도 자연스럽게 고양되었다. 교토마라톤은 단지 환경적인 성과를 넘어, 달리기가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또한, 뉴욕마라톤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제공되는 티셔츠와 완주 메달을 재활용 소재로 제작하고, 물품 수령 가방도 재사용 가능한 천 가방으로 대체했다. 뉴욕마라톤 조직위는 또한 대회 후 남은 음식과 물품들을 지역 사회와 자선단체에 기부하여 쓰레기를 줄이는 동시에 지역 사회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마라톤 대회가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베를린마라톤 역시 ‘Green Marathon’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환경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베를린마라톤에서는 급수대에 종이컵 대신 생분해성 컵을 사용하고 있으며, 참가자들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적극 권장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 또한, 대회 기간 동안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는 등 환경 친화적인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베를린마라톤은 지속 가능한 스포츠 이벤트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2024년 서울하프마라톤은 2만 개의 다회용컵을 도입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환경공학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를 통해 연간 탄소배출량을 승용차 100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양만큼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마라톤 대회와 환경 보호가 상충하는 관계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춘천마라톤도 ‘그린 러너’ 캠페인을 시작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면 특별한 기념품을 제공하고, 완주 메달도 재활용 금속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모여 참가자들의 환경 인식을 바꾸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라톤을 통해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라톤은 인내와 끈기의 스포츠다. 많은 이들이 완주의 순간을 위해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훈련에 몰두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환경을 지키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빠른 완주 기록만큼이나 중요한, 지속 가능한 달리기다. 우리는 이제 피니시 라인을 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구와 함께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의 몸을 넘어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위한 달리기를 시작할 때, 우리의 발걸음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런던정경대 환경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지구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만큼은 멈춰야 할 때다.” 이제 우리는 그 멈춤의 순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지구와 나란히, 함께 달리는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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