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시간 벽 깬 전설, 차세대 주자들과 함께 뛰며 새로운 역할 모색
엘리우드 킵초게(40·케냐)가 지난 일요일 시드니 마라톤에서 보여준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9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그를 향한 관중들의 환호가 오히려 더 뜨거웠다. 승부에서 밀려났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나는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다”고 말한 킵초게는 이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기록 경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10년 지배의 끝, 새로운 출발
2013년 함부르크 마라톤 데뷔전 우승을 시작으로 킵초게는 마라톤계를 지배했다. 올림픽 2연패, 세계기록 2회 경신, 그리고 유일한 2시간 벽 돌파까지. 15개 마라톤에서 승리한 그의 마지막 우승은 2년 전 베를린이었다.
하지만 킵초게는 패배를 의식하지 않는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다. 나는 지금 마라톤에 더 빠져있다. 단지 참여하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시드니에서 그는 후반 페이스가 떨어지며 선두그룹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달리는 시민 러너들과 소통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뒤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천천히 달리고 배우지만,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고 말했다.
마라톤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다
킵초게에게 마라톤은 단순한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달리기의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힘들게 훈련하고 피와 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눈물과 함께 결승선을 통과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보는 마라톤의 변화시키는 힘은 절대적이다. “시작하고 끝내는 순간, 당신은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그의 관심은 기록이 아닌 참여에 있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 그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달리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시드니가 증명한 마라톤의 세계적 확산
이번 시드니 마라톤은 세계 7번째 월드 마라톤 메이저로 새롭게 지정된 첫 대회였다. 킵초게는 이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시드니를 찾았다고 밝혔다. “내가 사랑하는 이 스포츠를 홍보하기 위해 왔다”며 “레이스를 뛰는 것만큼이나 스포츠를 알리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3만5000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에티오피아 하일레마리암 키로스가 2시간 6분 6초로 호주 신기록을 세웠다. 킵초게는 2분 25초 뒤인 2시간 8분 31초로 도착했다.
여자부에서는 네덜란드 시판 하산이 2시간 18분 22초로 호주 마라톤 여자 신기록을 작성했다. 도쿄 올림픽 5000m, 10000m 금메달리스트에서 마라톤으로 전향한 하산은 6번의 마라톤 중 4승을 기록하며 여자 마라톤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킵초게는 하산을 극찬했다. “시판 하산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새로운 세대 선수들의 리더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스포츠를 존중하고, 경쟁력을 가져다주며,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녀가 바로 그 사람이다.”
기술 혁신과 변하지 않는 본질
마라톤을 뛴 다음 날, 일반인들이 회복에 집중할 때 킵초게는 여전히 마라톤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애벗 바이오웨어러블과 혈당 모니터 등의 기술이 12년 전 첫 마라톤을 뛸 때와 비교해 러닝을 “100%” 혁신시켰다고 평가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선수들이 더 정확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라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여전히 뜨거운 열정, 바뀐 방향
월드 마라톤 메이저 중 뉴욕만 남겨둔 킵초게는 언제 은퇴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마라톤에 대해 여전히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은퇴가 그리 가깝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참가한 한 선수는 “그동안 개발협력 분야 진출이 막연했는데, 이번 과정을 통해 구체적 사업 설계와 지원 경로를 알게 됐다”며 “내년 코이카 CTS/IBS 사업에 꼭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듯이, 킵초게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 특권이 있는 나이에도 여전히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그의 말에서, 킵초게의 마라톤 인생이 단순한 경쟁을 넘어 개인적 성장과 공동체 기여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서 영감을 주는 존재로
킵초게가 보여주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 나가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그는 더 이상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가 아닐지 모르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러너다.
승리가 아닌 영감을, 기록이 아닌 희망을 전하는 킵초게의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레이스에는 골인 지점이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그의 레이스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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