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에서 페이스는 매우 일상적인 용어다. 달리기에서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전력을 다할 것인가, 아니면 나중을 위해 아껴둘 것인가.
페이스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븐 페이스, 네거티브 스플릿, 포지티브 스플릿. 언뜻 들으면 어려운 용어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단순한 개념이다. 마치 소설의 구조처럼,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을 뿐이다.
이븐 페이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전략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 얼마 전 마라톤을 완주한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계속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마치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드는 것처럼요.”
어쩌면 이븐 페이스는 현대인의 일상과 가장 닮아있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듯,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스플릿은 조금 다르다.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를 높이는 이 전략은, 마치 잘 써진 소설의 구조와 비슷하다. 도입부에서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다가,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처럼. 하지만 이 전략에도 함정이 있다. 초반의 여유로움이 자칫 안일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마치 마감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며 미루다가, 결국 막바지에 허둥대며 글을 쓰게 되는 것처럼.
포지티브 스플릿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전략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달리다가, 후반부에는 속도를 늦추는 방식. 청춘의 열정과 닮아있달까.
우리는 왜 이토록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시간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결코 균일하지 않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더디게 흐르고, 즐거운 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마라톤에서도 마찬가지다. 첫 10km는 마치 산책하듯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30km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1km가 마치 10km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점점 더 끈적거리며 흐른다. 이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은, 어쩌면 삶에서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신을 아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 리듬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러너도 자신의 달리기 리듬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초보 러너라면 이븐 페이스를 권한다.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은 좋지 않다. 마치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 단번에 대작을 쓰려고 하는 것처럼 위험하다. 먼저 자신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그 다음에 네거티브 스플릿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포지티브 스플릿은… 글쎄, 나는 크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자신 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결국 페이스 전략이란, 자신과의 긴 대화이다. 42.195km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한다. “지금 이 속도가 적당한가?” “조금 더 빨리 달려도 될까?” “이제 슬슬 페이스를 올려볼까?” 이 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마라톤의 진정한 매력일지도 모른다. 달리면서 우리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고,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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