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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달리는 미래” 베이징에서 열리는 인간-로봇 하프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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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베이징 E-타운 하프 마라톤에 참여한 휴머노이드 / VCG

베이징에서는 곧 21킬로미터 마라톤 코스에 로봇들이 줄지어 달릴 것이다. 이미 일정은 확정되었다. 4월 13일,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로봇과 인간이 함께 달리는 풍경을 상상해보았다. 인간의 땀방울과 로봇의 기름 한 방울은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가질까. 그래서인지 주최 측은 안전을 위해 로봇들에게 별도의 트랙을 마련해두었다. 장벽이나 녹지대로 분리된 코스. 우리는 ‘분리’에 익숙하다.

베이징시 정부 정보 사무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2,000명이 넘는 인간 참가자와 20개 이상의 인간형 로봇 팀이 함께할 예정이다. 8월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스포츠 미팅도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과 로봇의 스포츠 경쟁이 점차 일상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대회 규정을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로봇들은 3시간 30분 안에 완주해야 하며, 배터리가 방전되면 교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로봇 교체마다 10분의 페널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중간에 누군가 대신 뛰어준다면 실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봇에게도 일종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로봇들은 반드시 인간의 형상을 해야 한다. 바퀴가 아닌 두 발로만 이동해야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만이 인간과 경쟁할 자격이 있다는 암묵적인 룰이다.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인간처럼 달려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기준이다.

제어 방식은 수동 원격 제어(반자율 포함) 또는 완전 자율 운영이 가능하다. 참가 팀은 로봇이 트랙, 다른 로봇 또는 주변 인원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경계심을 읽을 수 있다. 로봇은 경쟁하되,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우승, 준우승, 3위의 상금은 각각 5,000위안, 4,000위안, 3,000위안. 미화로 환산하면 700달러가 채 안 된다. 인간 대회의 상금에 비하면 소박하다. 완주상, 최고 지구력상, 가장 창의적인 디자인상 등 다양한 부문의 시상 카테고리도 마련되어 있다. 로봇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풍경은 어떨까.

지난해 10월, 티앙공이라는 로봇은 베이징 이좡 하프 마라톤의 마지막 100미터만 달렸다. ‘토끼’라 불리는 페이서 역할이었다. 인간들을 위한 조력자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엔 전체 코스를 함께 달린다. 조력자에서 경쟁자로, 로봇의 위치가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네 발 달린 로봇 개 ‘RAIBO2’가 상주 감말랭이 마라톤을 완주했다. 인간형이 아닌 동물형 로봇도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형, 동물형을 넘어 언젠가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로봇들이 인간과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 로봇 산업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2023년 27억 6천만 위안이던 시장 규모가 2029년이면 750억 위안으로 커질 전망이다. 전 세계 시장의 32.7%를 차지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숫자 뒤에 숨은 의미를 생각해본다. 이 모든 로봇들이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까.

140개 이상의 로봇 기업이 모여 있는 베이징 E-타운. 그곳의 로봇 산업 생산액은 약 100억 위안으로 도시 전체의 약 50%를 차지한다.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 도시의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봄날의 어느 아침, 인간과 로봇이 함께 달리는 모습은 어쩌면 미래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E-Town은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 발전, 고급 휴머노이드 제품의 산업화, 최상위 혁신 생태계 육성에 주력할 것”이라는 발표는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로봇 산업은 산업 자동화, 의료 및 서비스 업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미국 디자인 스튜디오 퓨즈프로젝트는 최근 가정과 상업 환경용 AI 기반 로봇 ‘카인드 휴머노이드’를 제안했다. 일본의 로봇 스타트업 유카이 엔지니어링은 라스베이거스 소비자 가전 박람회에서 뜨거운 음식을 식히는 고양이 모양 휴대용 로봇을 공개했다. 각국의 문화와 필요에 따라 로봇의 형태와 기능도 달라지고 있다.

마라톤은 인간의 지구력과 정신력을 시험하는 스포츠다. 21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몸은 지치고, 마음은 흔들린다. 그럼에도 계속 달리는 것은 목표를 향한 의지 때문이다. 로봇에게 마라톤은 어떤 의미일까. 배터리 수명과 모터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공지능의 판단력을 시험하는 것일까.

4월의 베이징, 로봇과 인간이 함께 달리는 그 광경을 상상해본다. 인간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던 로봇이 이제는 나란히, 때로는 앞서 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만든 것들이 우리를 앞지르는 순간,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티앙공이 100미터를 달린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21킬로미터 전 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기술의 진보는 때로는 기하급수적이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로봇 마라토너가 인간 기록을 갈아치울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지만 달리기의 본질은 기록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인간에게 마라톤은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로봇과 함께 달리면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경쟁과 공존을 배우게 될 것이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함께 달리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지도 모른다.

로봇마라톤휴머노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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