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들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꿀까. 총 길이 55킬로미터의 강주아오 대교는 그 답 중 하나일 것이다. 세계 최장의 해상 및 터널 융합 대교가, 이제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새로운 도전의 무대가 되었다.
2025년 1월 5일 아침, 강주아오 대교 홍콩 통상구에 8,000명의 마라토너가 모였다. 그들은 10.5킬로미터 지점을 돌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21킬로미터의 하프마라톤 여정을 시작했다. 올해는 완주 제한 시간을 기존 2시간 30분에서 3시간으로 늘렸다. 마치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더 많은 여유를 주듯, 달리는 이들에게도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14개월 전 첫 대회가 남긴 쓴맛은 이번에는 달콤한 성공의 맛으로 바뀌었다. 화장실 부족과 물류 대란으로 얼룩졌던 지난 대회의 기억은 이제 희미해져 가고 있다. 70개가 넘는 화장실, 6개의 급수소, 그리고 바나나와 크래커가 담긴 선물 가방까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변화의 증거였다. 마치 첫 연애에서 실패한 후 두 번째 연애에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대회 조직위원회는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에티오피아의 밀케사 멘게샤는 1시간 1분 27초라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3초 차이. 스포츠에서 이보다 극적인 간격이 있을까. 케냐의 패트릭 모신이 그의 뒤를 바짝 쫓았지만, 결국 멘게샤의 그림자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들의 레이스는 마치 잘 쓰여진 단편소설 같았다. 시작과 중간, 그리고 결말까지 긴장감이 이어졌다.
여자부에서는 21세의 케냐 선수 그레이스 나워우나가 1시간 7분 56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나라의 쉴라 첼가탕을 10초 차이로 제치고 올라선 시상대는 그녀의 젊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당당해 보였다. 나워우나는 인터뷰에서 “홍콩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의 눈에는 달리는 동안 보았을 새벽 바다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모든 참가자들의 경험이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앨런 자구리라는 참가자는 오전 4시 30분에 집을 나서 5시간이나 걸려 완주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 대회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도 그의 말처럼 ‘물류가 너무 복잡한’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개의 도시를 잇는 거대한 다리 위에서 열리는 마라톤이니까. 완벽한 편리함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욕심일 수 있다.
이 대회가 가진 의미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 그 이상이다. 홍콩, 주하이, 마카오. 세 도시를 잇는 다리 위에서 전 세계의 러너들이 모였다. 그들은 각자의 나라와 문화를 대표하며,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달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연결’의 의미가 아닐까.
홍콩 최초의 여성 우승자가 된 버지니아 로 잉치우는 1시간 16분 45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녀의 우승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홍콩 육상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때로는 이런 작은 성공이 더 큰 변화의 시작점이 되곤 한다.
대회 조직위원장 사이몬 옌은 “더 크게 만드는 것보다 더 좋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다. 때로는 성장보다 완성도가 더 중요하니까. 그는 “참가 인원을 늘리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좋은 소설가가 독자의 수보다 작품의 질을 중요시하는 것과 같은 태도다.
강주아오 대교 하프 마라톤은 이제 세계 육상 경기 연맹의 골드 레이스가 되었다. 플래티넘까지 한 단계 남았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든 위대한 마라톤은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날 8,000명의 달리기 애호가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어떤 이는 기록을 위해, 어떤 이는 완주를 위해, 또 어떤 이는 단순히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달렸을 것이다. 그들 모두의 발자국이 모여 강주아오 대교 하프 마라톤의 두 번째 챕터를 완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교량을 달린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운동 경험을 넘어선다. 인간의 기술력과 도전 정신이 만나 이루어낸 위대한 건축물 위에서,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대회가 가진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중국의 마라톤은 이제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상하이 마라톤에서만 38,000여 명이 참가했고, 그들이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마라톤이 가져온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샤먼 마라톤의 경우, 누적 경제효과가 44억 9천만 위안(약 8천 428억 원)에 달한다. 이는 한 도시의 마라톤 대회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성과다.
중국의 마라톤 열풍은 도시의 품격도 높였다. 샤먼은 ‘마라톤의 도시’로 거듭났고, 베이징은 국제 골드라벨 대회를 품은 자부심으로 빛난다. 상하이는 2027년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통도 있다. 최근 베이징 하프 마라톤에서 불거진 승부 조작 논란은 중국 마라톤이 극복해야 할 과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신뢰는 마라톤의 생명이며, 이는 중국 마라톤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다.
중국의 마라톤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2024년 3월 마지막 주에만 40여 개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꿈꾸는 중국 마라톤의 비상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술의 도입이다. 2025년 상하이 마라톤은 전자지도를 도입해 참가자들에게 더욱 편리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2024년 베이징 이좡 하프 마라톤에서는 ‘톈궁’ 휴머노이드 로봇이 참가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샤먼의 변화는 마라톤이 가져온 도시 혁신의 대표적 사례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 도시 인프라가 개선되었고, 시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근린 운동장’ 같은 체육시설이 늘어났고,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도 크게 향상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샤먼 마라톤의 브랜드 가치는 22억 9천300만 위안(4천304억원)을 기록했고, 7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마라톤은 관광, 숙박, 요식업 등 연관 산업의 성장도 이끌었다.
더불어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샤먼 마라톤은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의 플래티넘 라벨 레이스로 승격되었고, 2019년에는 국제마라톤거리경주협회(AIMS)로부터 환경 관련 ‘그린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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