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철이되다.
통영의 새벽 바다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검은 물결은 희미한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차가운 공기는 숨을 깊게 가라앉혔다. 그 바다 앞에 네 명의 배우가 서 있었다. 진서연, 유이, 설인아, 박주현. 그들은 더 이상 대본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수영복과 자전거, 달리기화가 그들의 모든 소품이었다. 그리고 이 무대엔 대본도, 감독도 없었다. 단지 살아있는 물결과 험한 도로,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있었다.
넉 달 전,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었다. 그들 앞에는 대본이 있었고, 연출자는 ‘컷’과 ‘NG’를 외칠 수 있었다. 연기란 결국 잘못되면 다시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재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무대였다. 이제는 누구도 그들에게 ‘컷’을 외칠 수 없었고, 그들이 맞닥뜨려야 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매일 새벽 그들은 수영장에서 물과 싸웠다. 물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팔을 저었고, 한낮의 도로 위에서는 자전거와 함께 질주했다. 저녁이면 달리기 트랙 위에서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들은 새로운 배역을 연기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쇠를 달구듯 자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무쇠소녀단’. 그 이름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 그들은 그 이름을 살이 되고 뼈가 되도록 받아들였다.
통영의 바다는 어둡고 거칠었다. 네 사람은 묵묵히 장비를 점검했다. 수영복을 몸에 맞추고, 자전거의 체인을 다시 확인하고, 달리기화 끈을 조였다. 분장실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해야만 했다.
첫 장면은 수영이었다. 진서연은 물 공포증이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바다는 검고 깊었다. 이전의 그라면 스턴트 배우가 대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출발 신호가 울렸고, 그는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네 명의 배우 가운데 가장 느린 속도로,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헤엄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포를 마주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포기는 없었다. 물 속에서 그의 몸짓은 비틀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유이는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도로는 딱딱했고, 그의 몸은 무겁게 나동그라졌다. 경기복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이것은 더 이상 CG로 처리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그 장면을 편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올랐다. 피 묻은 손으로 페달을 밟으며 나아갔다. 그의 눈빛은 그 어떤 연기보다도 진실했다.
설인아의 무릎은 오래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달릴 때마다 무릎은 쇠처럼 무거웠고, 통증은 그를 주저앉히려 했다. 그러나 그에게 NG는 없었다. 다음 테이크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 테이크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박주현은 자전거 체인이 빠졌다. 손에 기름이 묻고,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체인을 다시 끼우고 페달을 밟았다. 이 드라마에는 대체자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모두 완주하는 거야. 엔딩은 이미 정해졌어.” 진서연의 목소리는 쇳소리를 담고 있었다. 그 말은 명령이자 다짐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의 눈빛도 변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으로 서로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완주하겠노라고.
열 킬로미터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그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고, 숨은 목 끝까지 차올랐다. 박주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카메라를 위한 눈물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눈물이었다.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다. 오직 앞만 바라보며 달렸다.
유이가 먼저 결승선을 넘었다. 삼 시간 이 분 사십육 초. 지난 모의 경기보다 무려 마흔한 분이 단축된 기록이었다. 그의 눈물은 이제 연기가 아닌, 진정한 도전의 증표였다. 이어 박주현이, 설인아가, 그리고 진서연이 차례로 결승선을 넘었다. 각기 다른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완주했다. 네 사람의 표정은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무쇠소녀단’의 마지막 회는 그렇게 끝났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네 명의 배우가 진정한 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연기의 가면 뒤에 감추어진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유이는 말했다. “4개월 전 나는 ‘할 수 있을까?’라던 사람이었지만, 오늘 나는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말은 대본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카메라가 꺼졌다. 네 명의 배우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새로운 대본을 받고, 새로운 역할을 맡아 연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달라졌다. 그것은 연기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도전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것이었다.
엔딩은 처음부터 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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