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42.195km를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3시간 30분 1초였다. 1초가 아쉽다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1초가 달랐다면 다음 대회에서는 조금 더 좋은 출발 그룹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대화를 그와 나눌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1년 전의 그는 마라톤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그도 아파트 단지 헬스장에서 가끔 운동을 했다. 퇴근 후 땀이나 식힐 겸 트레드밀을 한 시간 정도 뛰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규칙적이진 않았다.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지하에 있는 헬스장이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갑자기 의미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누군가 권해서도 아니고, 특별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닌, 그저 사소한 불편함이나 우연한 선택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파트 한 바퀴로 시작한 그의 달리기는 점점 더 먼 곳으로 향했다. 단지를 벗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근처 공원을 거쳐 한강변까지 가게 됐다.

처음 5km를 완주했을 때 그는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마치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성취감을 느꼈다고.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5km는 곧 10km가 됐고, 10km는 하프 마라톤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풀코스 완주까지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하필 마라톤이었냐고. 수영이나 자전거, 혹은 다른 어떤 운동이어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마라톤이 아니었더라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다만 그의 경우에는 우연히 달리기였을 뿐이다.

마라톤 러너들에게 42.195km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거리 이상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며, 때로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1년 전의 그는 이 숫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때때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 변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정작 본인도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강물이 흐르듯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런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게 아닐까. 단지 그것을 깨우는 계기가 없었을 뿐.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마라토너일지도 모른다. 혹은 화가나 음악가,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지하 헬스장이 답답하다는 사소한 불편함.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뿐.

그는 이제 다음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다음 풀마라톤에서 3시간 30분의 벽을 깨는 것. 1초의 차이로 놓친 그 기록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그 도전은 12월 타이베이에서 이어진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멈추지 않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